'없었다'고 적힌 생명들

서울에서 좋아하는 산이 어디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무악재역에서 출발하는 안산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개인 숲해설 프로그램을 찾아준 이가 자신의 산책로에 초대해 주었을 때 그 아름다움을 처음 만났다. 데크길 옆으로는 산사나무, 팥배나무, 좀작살나무, 밤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화백나무, 편백나무, 아까시나무, 가중나무, 황벽나무, 고욤나무가 이어지고 데크길을 벗어난 먼 풍경에는 풍부한 하층식생이 발달해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천천히 살펴보다 보면 1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에 걸려 걷게 된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쉬나무가 우거진 쉼터가 나온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고, 요가를 한다. 나는 그곳에서 숲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관찰의 시간을 보내거나 점토를 조물거리며 한가로운 여유를 누리기도 했다. 여름이 채 사라지지 않은 때 주름조개풀이 보이고 비비추가 있던 곳. 어여쁜 철쭉의 잎을 들여다볼 수 있던 곳. 가을이 다가오면 곳곳에 꽃무릇이 피고 사계절 내내 푸른 줄사철이 있던 곳. 땅속에는 수많은 씨앗들이 움트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낙엽 더미 아래에서는 곤충들이 몸을 숨기고 편히 쉬고 있었을 것이다. 상상의 가지가 자연스레 뻗어나가던 땅이었다.

그런데 지난 11월부터 공사가 시작되는 기미가 보이더니 12월에 다시 찾은 그곳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층식생은 모두 뽑혀 나가고, 바닥에는 식재된 이끼가 깔려 있었다. 서리이끼와 깃털이끼가 타일 조각처럼 붙어 있었고 인부들은 이끼 위로 내려앉은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그 옆에는 곤충아파트가 세워져 있었다. 곤충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집인 낙엽을 치워버리고 대신 놓인 곤충아파트는 꽤 그럴듯해 보였다. 서리이끼와 깃털이끼가 깔린 ‘이끼숲’에는 미스트 펌프까지 설치되어 있다. 인공적으로 습도를 맞춰주어야 유지되는 숲을 조성한 선택 앞에서 나는 유감스러움을 느낀다.

보기엔 참 근사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 앞에서 괴기스러움을 느꼈다. 숲에서마저 오래된 것들이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것 같아서였다. 이곳이 무언가의 자취를 감추는 장소가 되었구나 싶어서.

어찌 된 연유로 이런 공사가 진행되었는지 궁금해 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 민원으로 남겼다. 이어 돌아온 답변을 요약해 본다.
이끼 숲 조성 사업으로 제거된 식물종이 있는지에 대해 구청 측은 "쉬나무들이 우겨져 있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그늘진 환경이었다. 하층 식생이 거의 자라지 않는 나대지 상태에 가까웠다"며 일부 자생하고 있던 줄사철과 꽃무릇 등의 관목 및 초본류는 "생육에 적합한 인근 부지로 안전하게 이식(옮겨 심기) 조치"했다고 답했다.

스스로 자라고 있던 숲은 공무원의 시선 안에서 황량한 나대지로 기록되었다. 잘 자라고 있던 것들이 ‘없었다’고 적히는 순간, 쉬나무의 그늘 아래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던 하층식생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문서 속에서는 존재 자격을 박탈당했다. 더구나 그 논리대로라면 이미 나대지였던 곳에서 굳이 밀어낼 것들도 없었을 터였다. 이미 잘 자라고 있던 관목과 초본을 다른 곳으로 이식했다고 해서 그 뿌리가 새로운 자리에서 무사히 활착하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지자체가 필요한 사항이 있을 때(예를 들어 보행로를 방해한다든지), 최소한으로 식생을 정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끼숲을 조성하기 위해 굳이 기존 식생을 정리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아래와 같다.

"해당 사업은 단순한 경관 개선을 넘어, 생태적으로 더욱 풍부한 공간으로 복원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기존의 빈약한 하층 식생 상태를 그대로 두기보다는, 그늘진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이끼'를 식재하여 지표면을 녹화하는 것이 탄소 흡수 등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자연을 밀어내고 옮긴 뒤, 다시 ‘자연스러운 것’을 인공적으로 식재하는 선택은 건강한 숲을 꿈꾸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끼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기에 식재했다는 답변을 읽으며 그렇다면 이미 그 그늘에서 잘 살아가고 있던 식물은 무엇이었을지 되묻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숲을 향유하는 방법을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떨어진 낙엽이 흙이 되어가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어떤 것은 박멸하면서 어떤 것은 사랑스럽다 말하는 태도를 쉽게 오간다. 초록 생명체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기보다 풍경의 배경으로 소비한다. 보기 좋은 경관을 만들기 위해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보다는 이미 있던 식물을 치우고 새로운 것을 들여놓는 쪽을 선택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쉬나무 쉼터 뒤편의 풍경을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경관 개선, 활용도 제고, 정리라는 행정의 언어와 쌓임과 남겨짐, 썩음과 기다림이라는 숲의 언어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정리된 숲은 늘 설명을 요구하지만, 자연스러운 숲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끼숲으로 변모한 이곳이 생태적으로 더 나아졌다는 말이 내게는 유난히 건조하게 들린다.

숲은 공존 그 자체이지만 인간은 아직 숲과 공존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이제 이곳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숲을 상상하게 만들어야 할까. 오늘도 숲은 내게 소중한 질문을 씨앗처럼 심어준다.

이서영

이서영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싶기도 하지만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워 지나쳤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해요.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작고 부드러운 생명체들을 만나가며 깨닫게 되어요. 뭇것들이 오가고 깃들 수 있는 모리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