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숲해설가가 되기 위해 첫 발걸음을 내딛던 날,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비가 흐르는 계곡길은 가만히 있어도 미끄러웠고 뭣도 모르던 나는 등산화도 없이 현장 수업에 나섰다. 앞서가던 몇 분이 넘어지시는 모습을 보면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당시 수서생물들을 관찰하던 시간으로 첫 현장 수업의 문이 열렸는데, 아직도 그날 본 꼬리치레도롱뇽의 사각 턱이 기억난다. 계곡 바닥에 깔린 낙엽을 분해한다던 엽새우들도 만나고 말이다. 촉촉이 젖은 낙엽 위로 발을 내딛고 커다란 바위에 펴 있던 지의류를 들여다보던 순간은 숲에서의 시간 가운데 가장 황홀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무 수업을 듣던 날을 돌아보면 늘 떠오르던 뒷모습이 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옷차림에 모자를 쓰신 바로 남효창 박사님의 뒷모습이다. 박사님이 말씀해 주시는 나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말 이전의 언어로 소통해온 나무의 이야기를 머리에, 수첩에 기록하며 감탄하기 바빴다. 숲에서 나는 남효창 박사님의 두 눈을 마주할 때마다 ‘박사님은 소년의 눈을 갖고 계시네’라고 생각했었다.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힘쓰는 삶, 작은 존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침묵하는 삶, 깊은 숲에서 과감히 나를 지울 수 있는 마음은 영원히 낡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숲해설가 전문과정 교육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어떻게 나무 공부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해지던 차에 남효창 박사님의 책들을 만나며 안도할 수 있었다. 특히 『나무와 숲』은 세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열 번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 세 번에 머무른 지금, 박사님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는 모두 씨앗이다』.

이 책은 1부에서 4부까지 각 장마다 하나의 굵직한 키워드를 품고 이야기가 흐른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숲속의 어린 상수리나무 씨앗과 산 할아버지와 주고받는 편지는 한 편의 동화처럼 펼쳐진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막연하게 상상해 오던 숲을 뚜렷하고 세밀하게 볼 수 있도록 이끈다. 씨앗을 심으면 그는 당연히 나무가 된다 믿는 흐릿한 상상을 ‘무수한 생명들이 흩어져 살고, 겹치지 않고, 서로의 빈틈 속에서 제 길을 찾아가는’ 숲으로 확장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뿌리의 방향, 잎의 배열, 잎 가장자리의 무늬, 갈라진 몸통과 매끈한 몸통, 서로를 업고 있는 겨울눈 등 세상에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생명의 고유함을 알아차리게 하며 그 끝에는 자연스레 “왜?”라는 질문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질문이 터져 나오는 순간 우리는 그 이유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춘다. 생명의 얼굴과 눈을 맞추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사냥감은 없지만 사냥꾼의 자세로 이유를 추적하고 추측한다. 그 끝에 만나게 된 연약한 정답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박사님이 숲에서 해주셨던 이야기와 글자의 숲에서 말씀해 주신 이야기들은 나라는 나무를 먹이고 키웠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숲에서 설명하는 사람이기보다 참가자들의 발길이 멈춘 곳에서 그들이 나무와 충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숲해설가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고 있는 숲이기에 그가 품고 있는 의미 또한 모두 다양하다고 책이 내게 말해 주었던 것처럼, 협력과 공존을, 경쟁과 질서를, 분산과 차이를, 죽음과 생명을, 전환과 순환을 꺼내 보여주며 말이다.

단숨에 읽은 『우리는 모두 씨앗이다』는 숲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꼭 만나야 할 책이다. 감히 이 책을 쓴 이를 닮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책장을 덮었다. 이제, 나라는 씨앗을 사랑하고 보살필 수 있는 그 숲으로 걸어가면 되겠다. 덧붙이며, 남효창 박사님이 전해주는 나무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숲연구소이자 실내 치유 정원인 ‘마인바움’에 찾아가 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