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 review
개봉하기 전부터 목이 빠져라 기다려온 영화가 있었으니 조선시대부터 ‘왕의 숲’이라 불리던 가리왕산이 2018 평창올림픽을 위해 베어지고 깎여버린 이야기를 담은 <종이 울리는 순간>이라는 영화다. 개봉하던 날 처음으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조그만 토분 안에 심은 관엽식물을 돌보는 것으로 식물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작은 초록 생명체가 빛을 따라 몸을 움직이고, 물이 부족하면 몸을 늘어뜨리는 모습에 신기해하던 나는 숲을 공부하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해졌다. 가리왕산은 원시림이었다. 훌륭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식물들을 보호하고 연구하기 위해 유전자 보호림으로 보존되던 숲이었다.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 곳에서 숲은 어느 것하나 동떨어진 것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알파인스키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 보호림으로 보존되던 가리왕산은 단숨에 베어졌다. 축구장 150개의 크기에 해당되는 면적이 사라졌다. 그곳에 살던 긴꼬리딱새, 수달, 담비, 대륙사슴, 삵, 고라니, 멧돼지, 들메나무, 난티나무, 박쥐나무, 천년 이상 살아온 주목, 지름이 1m에 해당하는 신갈나무 등이 갈 곳을 잃었다. 순암리 마을도 사라지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도 집을 잃었다.

원시림은 한 지대가 무너지면 다른 지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극상림이 되어 식생이 풍부했던 부분에 구멍이 나면서 신갈나무, 사시나무, 참나무, 잣나무 종류가 잘려 나가고 임도가 생기면서 야생동물들의 발길도 끊겼다. 이는 큰 문제를 불러온다. 동물을 이용해 번식하는 전략을 갖고 있는 나무들, 그리고 그 동물이 잡아먹는 곤충들이 사라지면서 숲이 자연스럽게 다시 건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진다.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면서도 공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에서 '원상 복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7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대로 된 복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역 발전이라는 이유로 기왕에 설치된 곤돌라를 철거하지 않겠다고 한다. 약속한 대로 원상 복원를 해야 하는 환경부와, 일부 복구를 주장하는 강원도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는 1000만원 과태료 처분에 그치고 만다. 지난 9월에는 '가리왕산 합리적 보전·활용 합의문 공동이행추진단'이 출범했지만 애초에 약속한 원상 복원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해발 1,561m에 다다르는 가리왕산은 곤돌라를 타면 단 20분 만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등산이 어려운 노인과 장애인도 정상의 풍경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곤돌라를 타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석구석 파괴된 자연을 보며 감탄한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가리왕산의 정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의 발아래에는 숲이 있었다. 높이가 3km가 되는 나무들이 존재하던 석탄기를 지나 이산화탄소가 적어지면서 지금의 숲이 생겨났다. 당연하다는 듯이 숨을 쉴 수 있음은 식물이 만들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한 듯이 수많은 세월을 축적한 숲을 없애고 콘크리트를 붓고 건물을 올린다. 인간은 너무 많은 생명에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발아래에 숲을 묻고 싶지 않다. 숲의 땅 위에 서 있고 싶다.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볼 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수관을 보며, 바람에 나부끼던 가지들과 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높이 올려다보며 말이다.

집에 돌아와 엔딩크레딧에 쓰여있던 수많은 나무와 동물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곱씹던 즈음, 바로 앞 건물에서 공사 소리가 들려 동공이 커지고 꼬리를 부풀리며 경계를 하는 우리 집 고양이 모리를 보았다. 나무들이 베어지고 쓰러지던 소리를 들으며 달음박질쳤을 그들이 겹쳐 보였다.
영화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지저귐을, 작은 존재가 내는 바스락거림을, 말 이전의 언어로 소통하던 침묵의 소리를 그리고 숲을 관통하며 울리는 종소리를 들려준다.
모든 것을 빠르게 없애고 새로 만드는 세상에서 진정 변화해야 할 것은 단 하나의 종뿐이다.
바로 우리, 인간이다.